남들 다 한마디씩 할 때 말 보태는 걸 그리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남들 다 한다고 하면 할까 하다가도 안하는, 오히려 적잖이 삐딱한 성격에 가까운데, 그래도 뭔가 말을 하긴 해야겠다. 이것은 남들이 얘기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20대 내내 고민했던 것들 중 가장 많은 화두를 던져준 존재를 내가 어떻게 정리해서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현실감이 없었고, 그 다음에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느꼈다. 아, 이 사람이 어떤식으로든 내 의식 속에 차지하는 공간은 작지 않구나... 이것을 언어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라고.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말은 정리되지 않았다. 지금도 술김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쓰고 본다.
정리라던가, 일관성, 이런 건 일단 포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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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언어는 시원하다. 분노를 결집시키고, 동지들의 의지를 불태우며, 지지자를 결집시킨다. 그의 말에는 시시비비가 분명하며, 당위에 모자람이나 부끄러움이 없다. 말과 삶이 일치한다. 이십대에 그런 정치인에 열광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열광할 수 있을까. 깨뜨려야 할 벽 앞에 온 몸을 내던져 깨져가며 그 틀을 바꾸려는 바보 노무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세상에 온통 뜯어 고쳐져야 할 구조와 부조리하여 어떻게든 바로잡혀야 할 사람들만 보이던 시절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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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권모술수를 가치중립적으로 여긴다. 그것은 분명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사용하는 이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는 위험한 것이지만, 그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목적에 이르기 위한 길이 눈밭에 뿌려진 핏방울마냥 순일하고 선명한 것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인민의 입에 무엇을 떠 먹이느냐, 그리고 인민이 욕하고 싶은 이를 욕한 뒤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도록 해주느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방법은 칼끝에 투명하게 배인 핏방울마냥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러한 의지를 초인적이라 하지 않으면 다른 무엇을 초인적이라 부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마키아벨리스트이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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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염원하며 희망돼지 모금에 보냈던 당시의 보잘것 없던 돈 10만원은, 당시의 내겐 (잉여라는 관점에서 따지면) 지금의 수십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당시의 내게 그가 이루고자 하는 가치는 정말 간절한 염원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그렇게 많은 것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기쁘다고 신나게 돌아다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개표 발표 직전 엄기영 앵커의 입꼬리에 살그머니 붙은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보고 얼핏 당선을 예감했고, 지인과 닭에 맥주를 마시며 조촐히 기쁨을 삭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혁당은 산산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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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실망, 실망. 그것은 노무현에 대한 실망이기도 했지만, 실은 팔 할이 소위 민주세력이라는 작자들의 앎의 일천함과 실력 없음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앎과 현실감각, 그리고 인재는 절대 공짜로 얻는 게 아니라는 것을 통감했다. 아아, 수권 능력이란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여서 사람을 길러야만 얻어지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절감하고 또 절감했다.
한편으로는 노무현의 입이, 참 원망스러웠다. 지지자를 끌어모으는 언어와 적을 회유하는 언어는 다르다. 대통령이라면 후자를 자신의 언어로 삼아야 한다. 게다가 거기에 이해관계가 얽히면, 진정성 같은 것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큰 공백이 존재한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결국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매번 그 앞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나 어찌하랴. 사람은 자기 존재 양식을 버리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인것을. 그리고 기득권은 그러한 노무현에게 참 지독하게도 가혹했다. 노무현은 그들과 전쟁조차 치를 수 없었다. 애당초 기득권은 노무현을 자신들과 전쟁할만한 동격의 존재로 인정한 사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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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지 않은 날 이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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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에는 반대했지만, 노무현을 미워하진 않았다. 오히려 너무 빤히 진심이 보여서, 그냥 애처로웠다. 하지만 새만금을 끝내는 메워버리고, FTA를 진행하는 시점에 나는 그와 정서적으로 이별했다. 대통령이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감안해도 - 가령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던지 - 위의 두 사건만큼은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할 수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노무현만큼이나 내게 서글펐다. 결국 나는 아직까지도 정치적 지지 세력을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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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었다. 죽어야 할 인간들은 살아서 천세 만세를 누릴 듯 기세 등등한데, 정치 역정 뒤에서는 얼마든지 존경받아도 좋을 그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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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이전에 어떻게든 글을 끝맺고 싶었다. 내 안에서 그가 어떤 형태로든 납득할 수 있도록 정리되었으면 했지만, 지금까지도 불가능하다.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불가능할 것 같다. 그의 삶과 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하다. 그것은 거창한 각오나 담론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냥 삶을 이해하는 방식, 그것 하나를 소화시키는데도 너무 많은 생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깊이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