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익히지 아니한다.
분류없음 2009/07/24 01:19너무 뻔한 얘기 시리즈.
배운 것은 익혀야 쓸 수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 문법을 배운다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날들을 고민으로 지새야 비로소 소프트웨어 비스무리한거라도 만들게 된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것은 없다. 그래서 '학습(學習)'이라 한다. '습'을 배제하고 '그런 것이 있구나 '정도의 지식으로 헤쳐나갈수 있는 전문 분야는 없다. 그러므로 익힘은 배움의 전체 주기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지식 노동 조직은 이 학습에 굉장한 노력과 비용을 들인다. 지식 노동자의 지적 역량이 경쟁력을 본질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 역량에 따라 '더 새롭고 더 좋은 결과물을 더 빠른 시간에 더 좋은 품질로' 만들어낼 수 있다. 단점이 거의 없는 - 굳이 단점이라면 이직 가능성이 높아지는 정도? - 거의 유일한 개선 방법이다. 다른 모든 장치들은 이것보다 훨씬 많은 부작용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 노동 조직은 '학'에만 집중하고 '습'을 놓친다. '학'씩이나 시켜줬으면 됐지 '습'은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 조직도 '습'을 위한 섬세한 절차를 갖춘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본질은 '습'에 있다.
학과 습의 괴리는 자존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배우되 쓰지 못한 것은 단지 익힘이 부족할 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배운 사람의 정서에는 배워놓고도 쓰지 못한 것으로 각인되고,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배움 자체가 현실과는 유리된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 된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배워야 할 내용의 가치를 다시 셈한다. 그리고 자신의 옛 기억 속에서 비슷한 무엇을 더듬어 '그거 옛날에 해봤는데 별 소용이 없어'라고 답해준다.
바깥에서는 그토록 정보에 목말라하며 배움과 깨달음을 찾아 헤맸던 그들이 이제 그 젖과 꿀까지는 아니더라도 쌀밥에 고깃국 정도는 항시 제공되는 그 땅에서 배움을 배척하는 이상한 광경은, 어쩌면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 그려지는 당연한 풍경화일지도 모른다. 더 슬픈 광경은, 그렇게 꿈에 닿지 못해 좌절하는 이들에게 공포라는 채찍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광경이다. 명백한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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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지식 노동 조직은 또한 학습을 위한 조직을 꾸린다. 일부 조직은 최고학습책임자라는 직책을 두면서까지 학습을 조직의 주요 과제로 삼는다. 그러나 이 또한 경계의 단절이 무섭다. '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심지어는 아웃소싱을 해도 된다. 그러나 조직에 있어서 '습'은 문화이며, 습관이며, 무형의 것이다. 익혀야 할 암묵지들은 말단 조직에서 태어나고, 그 안에서 자라고 , 유통되고, 그 자리에서 나이를 먹는다. 다분히 지역적이다. 파티션을 넘어, 층을 건너, UTP케이블을 타고 좀처럼 이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환경에 민감해서, 전체 조직이 '습'을 증발시키는 문화를 가지면 제아무리 '학'을 부어 넣어도 절대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일에 중독된 천리마 영웅이 하나나 둘 정도 탄생할 뿐이다.
'습'은 감각적 경험이 목적이다.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다면 그 어느것도 이해할 수 없다. 클래스 덩어리의 느낌. 데이터의 흐르는 느낌. 인터랙션이 퍼지는 느낌. 언어의 명료한 울림. 이것을 비록 자신의 언어로 분명하게 표현해낼 수는 없어도, 느낌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짠 코드 앞에서 감탄하며 쾌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흥분하고 또 초조해 하는 것은, 지적 활동의 본질이 감각의 문제임을 너무나 동물적으로 증명해준다.
그러나 감각을 길들이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섬세하게 설계된 익힘의 절차가 필요하다. 그 절차의 질에 따라 감각이 길드는데 드는 시간은 천차만별이 된다. 같은 시간을 들인다면 길들여진 감각의 급이 다를 수밖에 없다.
더 큰 비극은, 육체적 감각이 이미 스트레스로 포화 상태라면 '습'을 위한 감각 수용 기관은 모두 닫혀버린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이 있어도 졸리면 자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통증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이런 상태를 이겨내려면 강한 정신 집중이 필요하지만, 사람의 정신력은 절대 무한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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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하면, 본질을 꿰뚫는 해법을 말하기에는 경험과 지식이 너무 일천하다. 다만, 배움뿐만 아니라 익힘을 위한 섬세한 장치와 문화가 필요하고, 익힘은 지역성이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익힘을 위한 장치를 매번 고심해서 디자인해야 한다는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디자인이 어렵다면, 그나마 가장 좋은 해법은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시간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시간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변질되므로, 적절히 저어줄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