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

분류없음 2010/01/07 11:58

모종의 설계 - 혹은 회의라도 상관없다 - 를 진행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점 중 하나는 '디테일한 사안에 빠져 시간을 소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교적 적은 시간을 들여 큰 방향과 뼈대를 잡아, 전체 흐름이 잘못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그 단계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디테일한 문제를 다뤄서는 안된다' 로 잘 못 이해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디테일을 순간 순간 확인하지 않고 구조를 정의할 수 있을까? 대체로 불가능하다. 디테일은 빈번하게 핵심 제약조건과 섞여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원론적인 악의는 없다. 지구의 멸망을 도모하는 집단 같은 건 없다.

디테일 속 악마를 착아내는 일은 다분히 경험적이다. 자신이 학습하고 경험한 몇 가지 가능성을 조합하고 순간적으로 연결하여, 대응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고, 그것이 가능할지 여부를 샘플링을 통해 검증한다.

잘 정의된 문제는 연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만나는 대다수의 문제는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사실상 뭔가 만들어 내야 하는 문제, 즉 디자인(설계)이 개입되는 것은 거의 다 제대로 정의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앞서의 전문가들은 자신이 자주 접하지 않았던 문제, 어려운 문제, 혹은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접하면 접근법을 바꿉니다. 탑다운과 버텀업을, 순방향과 역방향 사고를 섞어 씁니다. 전문가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비전문가는 어려운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력이 부족하며 자기의 문제 풀이 전략을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억지로 탑다운, 혹은 바텀업 등 한가지에 집착하려고 합니다.

- 김창준 ( 전문가에 대한 미신 : 협력을 어떻게 할까 )

설계 - 혹은 프로세스일 수도 있다 - 는 결국 이런 디테일을 가지는 각 사항들이 체계를 가지고 서로 연관을 맺게 하는 작업이다. 극단적으로 나누어 이야기 하자면, 설계하기 위해서 구현하는 게 아니라, 구현하기 위해서 설계하는 것이다. 당연히 디테일에 대한 의존성이 존재한다. 특수한 상황일수록 의존성은 더욱 증가한다.

요는, 디테일에 접근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작은 접근 비용으로 충분히 신뢰할만한 디테일을 가정할 수 있느냐이다. 이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졌을 때 '산으로 갔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산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디테일한 논의의 싹을 자르는 일은, 숨어 있는 악마도 같이 떠안겠다는 의지가 될 수밖에 없다.

설계 과정에서 확인해야 하는 디테일 속의 악마는 단지 향후에 일어날 어떤 일의 가능성 정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그 일의 가치와, 소요 비용이라는 아주 근본적인 변수와 닿아 있을 때가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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